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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굴

 겨울밤이었다

그날따라 뭔가 좀 이상했다

집을 나선건 밤 11시를 훌쩍넘긴 시간이었고

그날따라 이상하게 사람이 없었다

도로에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수도없이 지나다녔을 한강으로 나가는 토끼굴인데

그날따라 느낌이 평소와는 달랐다.

토끼굴의 공기도 조명도 뭔가 이질적이었다

토끼굴을 지나 한강에 도착했을때

그제서야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자전거 타는사람이라든지 산책나온 사람이

한두사람을 있을텐데 아무도 없었다

강주변 강변북로를 지나는 차소리가 들릴법도 한데

저 멀리서 들려오듯 괴괴할 뿐이었다

옅은 안개가 껴 있었다. 가로등 불빛은 평소보다 붉고

안개 속으로 가로등 빛이 퍼지면서 공기가 붉었다

더없이 어두운 하늘이었고 별도 달도 없었다 그저 검을 뿐이었다

한강물은 더없이 고요했다 강물의 일렁임이 없이 마치 고여있는 호수 같았다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뒤를 돌아봤지만

내가 지나온 토끼굴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풍경은 익숙했지만 여기가 어디쯤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토끼굴을 지나서 조금 많이 걸었을 수도 있으니

일단 한 방향으로 걸어보기로 했다. 다음 토끼굴에서 나가도 된다

그렇게 한참을 길을 헤맸다

토끼굴을 찾아 계속 걸었지만 내가 찾는 한강 진출입로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여기 어디쯤 있어야 할 토끼굴은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집으로부터 꽤 멀리 왔다고 짐작할 뿐

수도없이 와 봤을 한강변의 익숙한 풍경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공기는 여전히 붉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멀리보이는 아파트와 건물에서조차 아무런 인기척도

반짝이는 불빛고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생경하고도 그로테스크한 이 낮선 한강변에서

나는 불안을 넘어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영원히 여기서 빠져 나가지 못할것만 같았던 그때에

저 먼곳에서 내 쪽을 향해 오고 있는 사람 형체를 봤다

나는 그를 향해 뛰었다


그는 겨울용 두터운 점퍼와 함께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운동화를 신고 가볍게 걷고 있는걸 봐서 산책 나오신 분 같았다

- 저기요 죄송한데 제가 길을 잃은 것 같아요

혹시 가까운 토끼굴이 어디인....

그에게 물으며 가까이 다가가며 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고

순간 극도의 공포에 온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얼굴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고

이 세상의 것도 아니었다

나는 꼼짝도 할수 없었다

- ...나가.

분명 나가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나를 지나쳐 가버렸다

나는 너무나도 무서워서 꼼짝도 할수 없었고

뒤돌아본다는 생각같은 건 할수도 없었다

그저 여기서 빠겨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온몸이 몸시 떨려서 걷는것 조차 힘들었지만

억지로 다리를 움직여 한강 산책로를 따라 앞으로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는지 어떻게 몸을 움직였는지 잘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러다가 익숙한 한강 진출입로가 눈에 보였다

토끼굴을 건너와서 보니 집에서 멀지 않은 동네였다

먹자골목이 가까웠던 거리에는 행인들이 가득했고

늦은 시간인데도 도로에는 차들이 가득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서울의 모습이었다

내가 들어갔던 한강 진출입로와는 두개쯤 떨어진 곳이었는데

그래봤다 일킬로미터 남짓이었을 것이다

시계를 봤더니 집을 나선지 네시간이 훨씬 넘어 있었다

겨울밤 추위로 온몸에 감각이 없을 정도였지만

동시에 땀으로 옷이 모두 젖어 있었다.

두터운 패딩점퍼와 심지어 운동화까지도 온통 땀으로 가득했다

그 후로 한동안 한강변에 나가지 않았다

출퇴근길에 멀리서나마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나 바라볼 뿐

다시 한강변에 나가게 된 건 이년도 훨씬 넘는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났건지 모르겠다

내가 진짜로 경험한게 맞는지도 의심스럽다

나의 착각이거나 환상 또는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을 의심할만큼 이젠 그 기억도 희미하다

내가 봤던 그 존재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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