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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로스 페레스Carlos Perez y 로사 페레스 Rosa Perez 와의 인터뷰, 그들의 탱고 스토리




까를로스 페레스 Carlos Perez y 로사 페레스 Rosa Perez 라는 이름을 들으면 순덜랜드에서 토요일에 열렸던 깔리토스 쁘락띠까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여러 탱고 문디알 챔피언의 산실같았던 쁘락띠까였죠. 정말 좋은 쁘락이고, 추천은 여러번 들었는데, 순덜랜드의 공사 및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가 부에노르아이레스를 방문했을땐 쁘락이 열리지 않아 가보지 못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Kumi의 Milonguero's room 이라는(http://inheritingthetango.blogspot.com/) 개인 블로그에 게시된 글로 까를로스 페레스가 자신의 탱고 이야기를 인터뷰 자리를 통해전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는 아르헨티나 탱고의 선구자와의 인터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주인인 Kumi는 무엇이 춤을 아름답게 만드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댄서가 될 수 있는지, 과거의 탱고는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해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같이 보면 좋을것 같아서 번역을 남깁니다. 의역 오역 발번역 있습니다. 이점 너그러운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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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 아이레스, 09년 10월
쿠미에게

오스트리아, 독일, 런던 그리고 이태리를 여행한 후에 이제 저는 캐나다를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질문에 답장을 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글쓰는걸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건 좋아합니다.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더 좋겠지만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러기 쉽지 않네요. 당신과 “El Cuartito de los Milongueros"의 독자들을 향한 존경을 담아 이렇게 글을 씁니다.

Carlos Perez :
나는 1952년부터 춤추기 시작했어요. 처음 춤을 배울때엔 열살에서 열다섯살 나이가 더 많은 선배들과 연습을 하면서 배웠어요. 그 선배들은 나중에 매우 유명한 밀롱게로들이 되었죠. 그 후에는 그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여러 동네에 있던 클럽에서 춤을 췄어요. 그때는 탱고 음악이 전성기를 맞았고 많은 대중들이 탱고 음악을 좋아하고 즐겼어요.

로사는 몇년 후에 탱고를 시작했고, 집에서 오빠들과 연습했어요. 오빠들은 토요일에 로사를 데리고 춤을 추러 밀롱가에 왔죠.

우리는 1964년 즈음에 결혼을 했고 춤추기를 멈췄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탱고에 전업할 생각은 없었어요.우리는 우리의 에너지를 가정을 꾸리는데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죠.

그 당시에는 춤을 출 만한 곳이 없었어요. 춤추는게 가능한 장소의 수도 적었고, 또 그런 곳은 대부분 매우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께서 주로 오셨죠. 젊은 그룹의 댄서들은 재즈나 아메리칸 부기, 스윙을 췄고 탭댄스를 많이 배웠죠. 그후에 이태리로부터 스윙댄스 스타일이 넘어왔어요. 비록 인기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이 스윙댄스가 이후에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락앤롤의 선구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락앤롤은 요즘도 여전히 많이 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1994년에 탱고를 전업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시작하게 된건 우연이었죠. 어느날 저에게 탱고의 첫 걸음을 가르쳐 주었던 저의 첫 선생님이자 훌륭한 댄서이신 Jose "Lampazo" Vazquez 를 찾아갔어요. 그는 내 젊은 날의 이웃이었고 첫 탱고 선생님이었기에 우리는 따뜻하게 맞아 주셨죠. 우리는 클럽 'Sin Rumbo'에서 만났습니다. 그와의 관계는 따뜻하고 정말 좋았어요.

그후에 그의 제안을 따라 우리는 즐거움을 위한 취미로 그의 수업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호세는 건강이 나빠졌고 우리에게 그의 수업을 대신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이것은 우리가 탱고와 다시 함께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몇년이 지나고 우리는 훌륭한 댄서이자 친구였던 Jose "Lampazo"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운영하던 비샤 우르끼샤의 "sunderland" 수업을 클럽 운영회의 요청으로 물려받게 되었어요.

이것이 바로 어떻게 우리가 탱고 교육에 다시 전념하게 되었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0년 가까이 중단없이 계속 춤을 췄고, 그 시간동안 밀롱가에서 춤을 추면서 다른 스타일에 오염되지 않았었기에, 우리가 전통적인 탱고의 근본과 뿌리를 유지하는 행운을 얻은건 참 우연한 것이었어요. 우리의 모든 동작은 50년대 탱고의 것들이며, 이것은 탱고의 배움에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인 무엇이겠죠.

얼마나 오래 로사와 춤을 췄냐구요? 우리는 아주 어릴때부터 삶과 탱고를 공유했어요. 우리는 50년대의 탱고와 함께했어요. 우린 젊었고 열정이 가득했어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죠.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그 당시의 어떤 밀롱게로도 탱고로 경제적 수입을 얻으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 시절에는 탱고 때문에 여행을 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우리는 음악을 사랑했기에 춤을 췄고 구애를 위해서 춤을 췄어요. 우리에게 춤이란, 여자와 연결될수 있는 어떤 것이었으며 그리고 여자를 꼬시기 위한 방법이었어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춤을 더 잘추려고 노력했던 이유였어요.

우리가 처음으로 탱고 때문에 여행을 간 곳은 파리 였어요. 두달동안 수업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여행과 공연이 물밀듯 들어왔어요 : 몇개만 얘기해보면 파리의 샬롯 극장, 로마의Parco de la Musica,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꼴론 극장, 도쿄의 극장들 등이요. 우리는 텔레비젼 다큐멘터리와 영화도 몇개 찍었어요.

선배들에게 들은 바로는 40년대와 50년대 사이에 탱고가 가장 번성했다고 해요. 40년대에
Petroleo 와 el Negro Mansini 라는 훌륭한 댄서에 의해 턴-회전동작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 이전에는 깐솅게의 시대였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탱고는 더 섬세하고 우아하게 변해가기 시작했어요. 살롱 스타일의 탱고에서는 우아함이 매우 강조되었죠.

 클럽이나 하우스 댄스파티(꼬르테스나 께브라다 동작을 금합니다)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열렸습니다. 어머니나 오빠와 함께 온 소녀들은 어머니와 오빠와 함께 댄스 파티에 갔어요. 혼자 가는건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거든요.
50년대에는 오케스트라가 라이브로 연주를 했어요. 디살리, 다리엔소, 뿌글리에세, 까나로, 뜨로일로, 깔로 그외에도 많았어요.

 Saavedra, Urquiza, Villa Pueyrredon, Villa Devoto, Villa Real, Paternal, Villa Mitre 그리고 수도 주변의 동네에서 춤을 췄어요. 이 동네들은 춤 스타일은 비슷했고 잘추는 댄서가 많았죠. 수도 남부에서는 조금 더 거친 느낌의 탱고 오리쉐로 라고 하는 다른 스타일의 춤을 췄어요.

50년대의 스타일로 탱고를 추는 몇몇의 댄스홀과 댄서들이 있습니다(제가 미처 언급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미안합니다 제가 잊어버린 이름도 있어요)
Salon Agusteo, Oro and Santa Fe에 위치한 El Palermo, La Argentina, Urquiza의 Alumni, Sin Rumbo, Viento Norte, Estudiantes de Villa Devoto, Moran, Glorias Argentinas, Floresta Junior, La Emiliana, Mitre, Sunderland, Pinocho, 17 de Octubre, California, Penacho Azul, Juventud de Belgrano, Excursionista, Chacarita Juniors, Villa Sahores. 이외에도 더 많아요.
밀롱게로로는 Jose Vazquez "Lampazo", Osvaldo Mosi "El Nene", Mingo Canonigo, Gerardo Portalea, Eduardo Pereja, Maita, Gallego Villarrazo, Frasquito, Petroleo, el Jorobado Victor, Negro Luis, Tomas Luis, Luis Lemos “Milonguita”, Juan Carlos Copes, Rogelio “El Tio”, 그외에도 제가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당대 최고였던 훌륭한 댄서들이 많았습니다.
50년대에 젊은 남자들에게 탱고는 여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그 당시 여자를 만나는건 정말 쉽지 않았어요.

탱고 속에는 크고 많은 감성들이 들어 있습니다. 노래 가사는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이 많죠. 거리의 불빛, 자갈길거리, 어머니의 사랑, 애인, 부에노스아이레스 같은 것들이요

탱고의 규정과 규칙 그리고 코드를 지키는게 매우 중요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꼭 훌륭한 밀롱게로가 아니라고 해도 반드시 LOD(line of dance) 를 지켜서 춤을 추죠. 사람들로 꽉 찬 플로어라고 할지라도 춤을 즐기는데에는 문제가 없었어요. 왜냐면 플로어의 모든 이들이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음악을 들었기 때문이지요. 춤추다가 부딛히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었어요.

우리의 탱고에 있어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는 60년대였어요. 그때에는 클럽들이 대부분 문을 닫아서 춤추러 갈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현재의 탱고는 많이 발전했어요. 다른 인기있는 춤의 요소들이나 동작들이 탱고에 더해졌기 때문이죠. 그 중 어떤 것들은 제눈에는 매우 이뻐보이는 것도 있고, 어떤 것들은 탱고의 에센스에서 벗어나 보이는 것도 있어요. 물론 세상의 것들은 변하기 마련이고 젊은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는 걸 고려해야 합니다. 괜찮습니다.
탱고 역사 연구가들에 따르면 탱고는 아프리카 깐돔베에서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후 밀롱곤, 밀롱가, 오리셰로, 깐솅게, 살론 그리고 최근에는 탱고 판타지아까지 발달해왔습니다. 나는 스테이지 탱고가 5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탱고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항상 그랬어요. 우리의 삶 속에서 탱고는 음악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걸 허락합니다. 서로를 안고서 멜로디를 즐기면서 시간을 돌릴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주죠.
탱고는 세계의 여러지역의 사람들을 만날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는 전통적인 탱고를 모든 세대와 클래스에 전파했어요. 그동안 그렇게 심어놓은 씨앗들에 영향을 받고서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격려받고 전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우리는 행복하고 활기찬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어요.
우리가 가르친 학생들이 탱고 대회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커다란 행복을 느꼈어요. 그리고 그들이 그 이후에 댄서로 성장하고 세계를 여행하는 이들로 커가는걸 보면서 더 큰 행복을 느껴요. 아름다운 일입니다!

좋은 탱고댄서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냐고 누군가 저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 댄스의 뿌리와 근간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다른 의미에서 그들은 그저 좋은 댄서이거나 탱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댄서일 수는 있지만, 탱고의 뿌리를 모른다면 좋은 '탱고 댄서'라고 할수는 없을겁니다.
좋은 '탱고 댄서' 가 되고 싶다면, 이 탱고 음악과 사랑에 빠져야 하고, 탱고를 향한 헌신과 끈기가 필요해요. 그리고 탱고를 잘 아는 누군가에게 지도를 받는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무엇보다도 'lo que natura no da, salamanca no presta'(자연이 주지 않은 것은, 살라망카도 주지 못한다(살라망카 대학에서도 배우지 못한다))(주석1) 라는 격언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이는 극복해야 할(극복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게 있기도 하죠. 우리 사람의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요.

CARLOS Y ROSA PEREZ

원문 링크 http://inheritingthetango.blogspot.com/2009/12/interview-four-carlos-and-rosa-perez.html

주석 1.  살라망카 대학은 중세 유럽의 최고 대학이었다고 합니다